2024/11/24 13:55

마음의 배리어프리

특집
패럴림픽의 개최로 동경을 장애인에게도 상냥한 동네로 만들자.
예전은 수영이 서툴렀다고 하는 패럴림픽 수영금메달리스트 나리타(成田) 마유미(眞由美)씨한테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Q:나리타(成田)씨는 학교에서 자주 강연을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것을 어린이들에게전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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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하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 다음은 동료를 소중히 하는 것이네요.
저는 어렸을 때는 수영장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그런 저도 헤엄칠 수 있게 되고, 금메달을 쟁취하는 목표를 가지고나서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스러운 훈련은 괴롭습니다만, 수영장사이드(poolside)에는 응원해 주는 동료가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동료를 위해서도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Q:나리타(成田)씨는, 큰 수술이나 입원을 되풀이해도 그 때마다, 경이적으로 부활해서 활약되고 있습니다만, 그 에너지원천은 어디세요?

A:나의 경우는 언제나 어떤 엑시던트(accident)가 있어도 그 고통뒤에, 반드시 그 이상의 좋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때문에 언제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괴로운 것이 있으면,또 그 후에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 괴로움과 같이 갈 수 있었습니다.

Q:패럴림픽에서의 추억에 남는 씬이나 일은 무엇입니까?

A:아틀란타와 시드니의 패럴림픽에서 서로 경합한 독일의 카이•【에스펜하인】선수는, 훌륭한 라이벌이며 친우이었습니다. 어느 때, 그녀가 위독상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만, 저자신도 입원중이여서 움직일수없었고 어쩔수가 없어 5일동안으로 서둘러서 접은 천마리종이학을 카이의 어머니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천마리종이학이 카이한테 도착한것은 그녀의 죽음의 1일후이었습니다. 34세 뜻 반으로 돌아가신 그녀를 위해서도,또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생기였습니다. 패럴림픽의 대회의 뒤, 독일에 있는 카이의 무덤을 찾고, 그녀가 특기로 하고 있었던 배영으로 획득한 금메달을 묘 앞에 바쳤습니다. 내가 수영을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것도 카이와 같은 좋은 라이벌과의 상봉 때문이라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카이는 나의 마음 속에서 지금도 살아 있는 영원한 라이벌이네요.

Q:도쿄(東京)에 패럴림픽•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A: 『마음의 배리어 프리』가 아닐가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어주었으면 합니다. 장애인은 일본에서는 아직 활동이 한정되고 있습니다. 사실은 저는 건강인의 수영 대회에도 나가고 있습니다만, 처음에는 전례가 없어서 출장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례가 없는 것이라면 내가 만들려고 생각하고 계속 도전을 해서, 지금은 참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언제나 최하위이었습니다만, 출장하고 있는 동안에 조금씩 조금씩 순위도 올라 왔습니다. 어느 때, 다 헤엄친 후 관객석으로부터 박수가 터졌습니다. 장애인이라고 하는 것 보다, 단순한 애슬리트(athlete)로서 박수를 받게 된것 같이 느껴져서. 정말로 기뻤네요.

요즘 초중학교에서도, 장애인의 학생이 건강인의 학생과 함께 배우고 있는 학교가 있어요. 그런 학교에서는 내가 강연에 가도 어린이들은 빤히 볼 일도 없고, 보통으로 대응을 해 줍니다. 가능하면 한번, 경기로서 장애인의 스포츠를 보아 주시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의 대회라도 같은 스포츠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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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배리어 프리. 장애인이라도, 외국인이라도 자신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더욱 마음이 풍부해지네요. 「나는 사람과의 만남에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이라고 하는 나리타(成田)씨. 매우 밝고, 무슨일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사람으로, 이야기하고 있는것만으로 주변을 밝게 하는 해바라기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훌륭한 이야기 고마웠습니다.